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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the ‘2011 3월호-기사’ Category

 

특집·현악 전곡 시리즈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오래 바라보는 대상은 닮는다고 하던가? 순수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호수가의 오두막에서 오랜 시간 홀로 머물며 그리그는 자연을 닮는 음악을 만들고, 그곳의 청정함을 음악에 담아냈다. 그리하여 그의 바람대로  지치고 목마른 이들의 쉼터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다. 행복이 깃들어 있는 그의 음악에서는 끊임없이 삶의 기쁨과 새로운 생기가 샘솟는다. 자기만의 방이 아닌 모두를 위한 집을 만든 작곡가 그리그. 그는 행복한 음악가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작곡가로 기억된다.

① 개요 및 배경

음악적 자취의 궤적,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그 자신이 어느 날의 편지에서 밝혔듯이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사상적·음악적 발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다. 순박한 청년 낭만주의자에서 열렬한 민족주의자 그리고 이윽고 포용력과 깊이를 갖춘 총체적 음악세계를 드러내 주는 경지까지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작곡가의 자전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글·김순배(음악평론가)

 

② 작품 분석

시적이고 서정적인 자연을 담다

“바흐와 베토벤은 교회와 신전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 독일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갔던 그리그는 이국의 대도시에서 고국의 대자연의 가치를 절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견고한 음악 전통은 그의 기질과 천성에 맞지 않았다. 당대의 평론가들은 그리그의 소나타에 대해 음악적인 논리가 빈약하며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에는 자연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풍부하다.

글·서주원(음악칼럼니스트)

특집-현악 전곡 시리즈 |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③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노르웨이적 이디엄과 음색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고 싶다면 우선은 그리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겠지요. 그의 조국인 노르웨이의 역사와 자연환경에 대해 공부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고요. 무엇보다 하르당거 피델 소리를 찾아 들어 볼 것을 권합니다. 윤이상 씨의 작품을 연주할 때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악기를 아는 것이 소리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절대적이고 중국작곡가의 바이올린 곡에는 얼후의 차용이 많이 있듯이 하르당거 피델 소리와 스프링가르 리듬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리그의 해석에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성원-

 

④ 전곡 레코딩

치열한 서정성의 폭발

자이델의 동문이자 20세기 바이올린계의 아이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야사 하이페츠는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에 가장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그는 2번 소나타를 두 차례에 걸쳐 녹음으로 남긴 바 있다. 첫번째는 1936년 그의 첫 반주자인 엠마뉴엘 베이와 함께 녹음(RCA)했고, 20여 년 뒤인 1955년 두 번째 반주자인 브룩 스미스와 함께 녹음(RCA)했다. 그의 유일한 3번 소나타 녹음은 1936년 역시 엠마뉴엘 베이와의 녹음(RCA)으로서, 이 녹음에서 하이페츠가 보여준 그 치열한 서정성의 폭발은 이후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귀감으로 남았다. 

글·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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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다가가기 ⑬

현대음악의 인물들 <8>

존 케이지 I

 

케이지는 1960년대 이후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의례히 등장하게 되는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케이지의 사상은 음악·미술·연극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도처에 흘러들어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가 현대예술에 끼친 공로는 실로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마이클 카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케이지의 사고는 환경에의 인식이고 또 퍼포먼스에의 직접적인 존재인식이다.”

글·임현경(음악평론가)

아방가르드와 존 케이지

음렬주의 음악과 총음렬주의 음악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음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보편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음악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마지막 공통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음렬기법이라는 새 음악적 언어를 확립한 후 다시 또 다른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음렬기법을 포기하는 시점은 같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이 모색하기 원했던 길의 방향 역시 여러 갈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음렬음악에 대한 반발로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이 발을 들여놓았던 각각의 사조나 추세는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배경과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어우를 수 있는 공통적인 점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공통관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각 독특한 음악언어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어떤 음악적 사조도 뚜렷하게 우위권을 차지하는 추세나 흐름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즉, 여러 가지 다른 음악적 사조들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음악의 특징적 면모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다양성’이라는 용어로 함축될 수 있는데, 그 중 전위적인 ‘아방가르드’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다. 프랑스어로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말은 ‘앞장서서 지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말 그대로 이들 아방가르드한 전위예술가들은 음악예술에서 도전적이면서도 모험적인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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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 히스토리 ①

비올라 역사의 시작, 중세부터 바로크시대

비올라 다 감바

 

독주악기로서 비올라의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의 비올라 독주곡 창작과 함께 명 비올리스트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이 악기는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비올(Viol)족 현악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올라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과연 어떤 역사를 지나왔을까. 그 첫 순서로 중세와 바로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최초의 비올라는 1535년 가스파로 다 살로(Gasparo da Salo, 1542~1609)에 의해 탄생했다.

글·이중오 (비올리스트, 비올라 사중주 Quatrabratsche 리더, 국민대 겸임교수)

비올라(Viola)는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비올(Viol)족 현악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로 구조상 바이올린(Violin)과 유사해 전공자가 아니면 구분이 모호하다. 바이올린에 비해 완전 5도 낮게 음정을 조율하며, 특유의 깊고 어두운 멜랑콜리한 음색을 바탕으로 앙상블 연주에서 바이올린의 고음과 첼로의 저음역대 사이 중간음역을 담당한다. 또한 연주에 따라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화음의 중심축을 이루며 앙상블 연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앙상블에서의 이러한 역할로 인해 앙상블용 악기로만 인식되어 오랜 기간 독주악기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비올라가 20세기 들어 등장한 명 비올리스트들과 명 교사들에 의한 연주법 및 교수법의 체계적 연구, 문헌들의 재발견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의 지대한 관심과 함께 중점적으로 연구되고 작곡된 뛰어난 작품들 덕에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며 독주 및 앙상블을 망라하는 주역 악기로 부상하였다.

가르파로 다 살로

비올라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현악기를 총칭하는 용어였다. 당시 비올라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나 비올라 다 브라치오(Viola da Braccio)로 세분화됐는데 비올라 다 감바는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끼워서 연주하는 비올(Viol)족을 칭하였고,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팔로 받치고 켜는 바이올린족을 칭하였다. 이후 비올라 다 감바는 베이스 비올(Basso Viol)로,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테너 비올(Tenor Viol)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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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Power Interview | 심준호

 

내가 아닌, 작곡가를 드러내고 싶다

 

2010 베오그라드 쥬네스 뮤지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심준호가 지난 2월 17일 ‘금호아트홀 라이징 스타 시리즈’의 일환으로 베토벤·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등으로 독주회를 가졌다. 콩쿠르 심사위원장 나탈리아 구트만의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연주하는 진정한 음악가’라는 평은 참으로 적확했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연주뿐만이 아니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느낀 감정도 이와 비슷했다. 젊은 나이답지 않은 그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자세에서 ‘진정한 음악가’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연주가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내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한 후 꾸준히 찾아 주시는 분들이 있다. 정말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제 연주가 좋아서 오시는 분들이 단 몇 분만 계셔도, 나를 알리고 이런 걸 떠나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예원학교를 수석 졸업,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입학하자마자 독일의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에서 조영창 교수에게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1987년생이니 10여 년을 한 선생님과 함께 했다. 그것도 유학 가서 구태여 한국인 교수에게 배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참 특별한 케이스 같다.

초등학교 때 캠프에서 선생님께 처음 배웠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큰 감동을 받았고,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소원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유학을 오라고 했고, 뒤도 안돌아보고 유학을 떠났다. 테크닉과 같은 것보다도 음악을 대하는 자세, 특히 작곡가를 존중하는 자세를 진지하게 배웠다. 아시겠지만 평소에는 참으로 털털하시고 좋으시지만 레슨 때는 정말 엄격하시다. 소원을 성취한 것이고 그런 만큼 매우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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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주자의 음반 | 비올리스트 김상진

생각보다 좋은 나의 음악

 

실내악에서 사운드와 화성을 풍부하게 하는 비올라는 오늘날 그 입지가 부각되고 있다. 그런 만큼 국내 뛰어난 비올리스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마 비올리스트 김상진(연세대 교수)이 그런 대표적 연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의 레코딩 활동도 이런 활동들을 마치 대변하는 듯하다. 김상진은 자신의 총4종의 독주 앨범을 비롯해, 예음 콰르텟·금호아시아나 콰르텟·MIK앙상블과 같은 실내악 멤버로 총 10여 종이 넘는 음반 작업을 해왔다.

1997년, 김상진은 국내 첫 음반을 제작했다. 당시 KBS에서는 KBS FM 한국 연주자 시리즈 음반을 제작한 것. 그의 귀국독주회를 맞춰 제안이 들어왔고,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호흡을 함께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예음 현악 사중주단의 마지막 멤버로 참가하여 역시 KBS 시리즈 녹음을 하기도 했다.

“당시 부인과 한창 연애를 할 때였어요. 녹음할 때 밖에서는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물론 그때는 편집기술이 좋지 않아 거의 한 큐에 오케이를 해야 했지만요. 사실 연주자는 녹음할 때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생각이 콩밭에 있었던 셈이죠. 당시 자켓 사진이 지금보다 더 늙어 보이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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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 바이올리니스트 김 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시간이 지나도 예술가의 꿈은 변하지 않는다

바이올리니스트 김 민과 피아니스트 이대욱의 두오 리사이틀 소식이 새봄, 희망의 메시지처럼 날아들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척박한 시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음악’으로 희망을 꽃피웠던 예술가들이 아닌가. 40년 지기 우정이 빚어낸 연주의 색깔은 빠르게 빚어낸 인스턴트식 연주와는 다른, 세월과 경험으로만 빚어낼 수 있는 오묘한 향기를 품어낼 것이다. 청중 역시 그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통해 발견하고 싶은 것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품어왔지만 ‘나이가 많아서’ 혹은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서’라는 변명으로 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았던 버릴 수 없는 ‘희망’ 하나일지 모른다.

그는 평생 클래식을 해온 음악가이지만 보수적인 이미지보다는 자유롭고 열린 리더십을 가진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스스로 음악 속에 갇히지 않고, 계속 진행형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자신감이다.

사실 베토벤 작품은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산과 같은 존재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연주하기에는 그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고 또 너무 많은 나이에 연주하기에는 테크닉과 집중력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야말로 음악가에게는 언젠가는 올라야 할 봉우리와도 같은 것이다. 3년 만에 갖는 이번 무대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서 지인들은 기대와 함께 걱정의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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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16년 만에 내한

리카르도 샤이 &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오케스트라의 살아있는 역사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오는 3월 7일과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6년 만의 내한 공연을 펼친다. 2005년 이 악단의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 취임 이후 바흐는 물론이고 교향곡·종교곡·오페라 등 장르를 불문한 명연을 보여주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리카르도 샤이가 역시 이번 내한 공연을 진두지휘한다. 공연 첫 날인 3월 7일에는 마법과 같은 기교의 ‘악마 바이올리니스트’란 별칭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협연자로 선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1743년, 당시 왕족이나 귀족 외에는 궁전에 소속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없던 시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시민 계급이 관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오케스트라로 출범했다. 입장료만 있으면 누구나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초연하는가 하면, 1835년부터 멘델스존이 이 악단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묻혀있던 바흐의 음악들을 새롭게 부활시켰고, 멘델스존 본인의 작품과 함께 슈베르트·슈만 등의 작품을 연주하며 중흥기를 맞는다. 이후 수세기를 거친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라이네케·아르투르 니키쉬·푸르트뱅글러·발터·아벤트로트 등의 명장의 조련을 거치며 현재 단원 185명으로, 규모·실력·전통이라는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오케스트라 명문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2005년 리카르도 샤이의 취임과 함께 이들의 음악적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미국화된 듯한 구서독 오케스트라들 속 독일의 전통과 보수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악단 중 하나인데, 그러한 고풍스런 음향에 리카르도 샤이 특유의 타이트하면서도 편견을 깨뜨리는 음악적 스타일이 만나면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해 오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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