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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ivew | 앙상블 藝

 

Preivew | 앙상블 藝

 

잘 알려진,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노 사중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정미

 

“저희는 한 가지 색깔이 아닌 다양한 색깔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 많이 연주되지 않는 피아노 콰르텟 장르를 좀더 열심히 찾아내어 알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작품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쉽진 않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로 연주하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내에 많은 실내악 단체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단체가 있다. 작품이 많은 트리오 단체를 제외하고는 보통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연주하는 실내악 단체가 대부분인데, 앙상블 예는 그 드물다는 ‘피아노 사중주’ 편성을 꾸준히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5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앙상블 예가 정기연주회를 통해 다시 한번 ‘피아노 4중주’의 매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레퍼토리는 스위스계 러시아 작곡가인 폴 주온(Paul Juon, 1872~1940)의 ‘피아노 4중주 Op.50’, 가브리엘 포레의 ‘피아노 4중주 2번 g단조 Op.45’이다. ‘피아노 4중주’라는 장르가 희소한 만큼, 확실히 낯선 곡들임에는 틀림없다.

 “매년 잘 알려진 곡과 생소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 생존하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외 작곡가의 곡을 초연하기도 하고 좀더 다양한 시대와 색깔을 보여드리고자 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굴하여 나아갈 겁니다. 이번에도 낯선 파울 주온과 잘 알려진 포레의 곡으로 프로그램을 정한 것이지요. 주온의 음악은 독특한 소리, 다양한 스타일과 민족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갖고 있어요. Op.50은 감정적으로 풍부한 감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로맨틱 음악이지만 절대 지나치지 않은 곡으로 특히, 3악장은 낭만적인 음악 안에서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적 작곡가인 포레의 Op.45는 프렌치의 향취가 가득한 전형적인 클래식 작품입니다. 다채롭고 화려한 화성과 폭발할 듯한 열정을 담고 있는 곡이지요”

 

글·이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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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alk | 첼리스트 이정란

 

Talk Talk | 첼리스트 이정란

 

오케스트라에도 관심을! 

 

서울시향 첼로 부수석, 화음챔버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약하며 독주회 및 다양한 연주 무대로 차세대 가장 주목할 연주자로 꼽히고 있는 첼리스트 이정란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광화문 도심 속의 한적한 공원에서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한 연주자로서의 열정과 비전이 감동을 자아낸 유익한 시간이었다.

 

황지현 | 첼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엄마 뱃속에서부터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워낙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LP판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고, 3세 때 처음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께서 특히 아끼던 음반 중에는 프랑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이 연주한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이 있었는데 그 음악만 들려주면 덩치가 어마어마한 스피커 앞에서 어린 딸이 떠날 줄을 모르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는 제가 6세가 되던 해 런던(저는 어린 시절 런던에서 자랐어요)의 여러 악기점을 돌아다닌 끝에 제 몸에 맞는 1/16 사이즈의 첼로를 사주셨습니다.

 

정유진 | 유학을 프랑스로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프랑스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은 워낙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명문 학교입니다. 미국에도 좋은 학교가 많지만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유럽에 더 애착을 갖고 있었어요. 특히 프랑스는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듣고 보고 배울게 너무나 방대한 예술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예술의 한 일부예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보다 더 넓은 안목과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파리는 도시 자체가 예술이에요. 이십대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황지현 | 필립 뮐러 같은 최고의 스승을 사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 첼리스트들인 그분들은 선생님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뮐러 선생님은 세계적인 솔로 커리어를 쌓는 이 시대 최고의 첼리스트들을 배출하신 훌륭한 지도자세요. 워낙 클래스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경쟁률도 센 것으로 유명합니다. 클래스에 들어간 이후에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게 되고요. 선생님은 학생의 수용력에 따라 과제를 내주시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제가 얼마나 더 열심히 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배움에 임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성실히 연습하고 보다 많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지도해 주셨거든요. 학교의 정해진 수업은 일주일에 한 시간이 전부지만 제가 의욕적으로 콩쿠르도 나가고 연주도 하면서 수업 시간이 부족하면 선생님은 언제든지 무상으로 레슨을 해 주셨습니다. 제게 음악가로서 큰 영감을 주신 분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얼마 전에 타계하신 보자르 트리오의 창단 멤버셨던 버나드 그린하우스 선생님이세요. 파리에 살면서 매년 여름마다 남프랑스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퐁프로와드’라는 작은 수도원에서 열리는 선생님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학생 수를 8~10명으로 제한하고 정말 조용히 가족 같은 분위기로 열리는 이 마스터 클래스를 저는 일 년 내내 기다리곤 했어요. 그린하우스 선생님의 첼로 레퍼토리 레슨은 물론이고 90세의 한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모습, 살아온 보석 같은 이야기, 여전하신 유머 감각으로 젊은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시는 모습 자체가 전부 다 너무나 소중하고 영감이 되었거든요. 단 한 프레이즈의 음악을 연주해도 누군가에게 감동이 되는 연주를 하라 하셨어요. 한 줄의 음악도 작곡가에게 무의미하게 쓰인 음악은 없다 하셨죠.

 

황지현 | 학창 시절 연습은 몇 시간이나 하셨나요. 또 지금은 몇 시간을 하시는지요. 연습 시간이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학창 시절에는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았던 저는 뭐든지 잘하고 싶어했어요. 연습을 많이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어서 하다 보니 저절로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연습은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성인이 되고서야 알았어요. 물론 연습량에 자신감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기는 해요. 하지만 연습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정말 바빠서 연습을 예전처럼 많이 하지 못해요. 대신에 30분을 악기 앞에 앉아도 꼭 도움이 되게 연습을 해요. 지금 내게 주어진 30분 안에 꼭 이 부분을 해결하겠단 생각을 가지고 몰입해서 해요. 목적 없이 답답한 연습실 안에 갇혀 악기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자주 보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차라리 그 시간에 바람도 쐬고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도 떨고 놀러가라 하고 싶어요. 연습은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하는 게 효과적이고 대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유진 | 아직도 연습일기를 기록 하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요.

이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제 습관이에요. 그날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연습량을 설정한 다음에 연습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거예요. 연주 또는 콩쿠르 전에 할 곡들이 많을 경우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꼭 필요하기도 하구요.

 

황지현 | 저는 음정에 약합니다. 음정 연습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있는지요.

어떤 곡이든 처음 할 때 대개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우선 음반을 통해 들어보고 악보를 읽죠. 단, 악보를 읽을 때에는 제일 처음 할 때부터 연주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런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테크닉 연습에 들어가요. 이 곡에 필요한 기본기를 만드는 거예요. 천천히 활을 잘 붙이고 메트로놈을 이용하며 음정·리듬과 같이 제일 기본적인 것들을 신경 쓰며 연습을 해요. 특히, 어려운 부분들을 먼저 연습해서 곡 전체가 균등하게 용이하게 연주할 수 있게 만들고 나면 음악적으로 디테일하게 들어갈 수 있어요. 기본기 연습을 천천히 하는 동안에는 저절로 이 곡에 대한, 또는 프레이즈에 대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생기게 됩니다. 테크닉적으로 곡이 어렵지 않게 되면 연습한 데다가 계속 색깔을 입히는 거예요. 무슨 곡을 할 때 저는 항상 곡을 분석해서 여러 등분으로 나눴어요. 그렇게 나눈 섹션들에 번호를 매기고 부분 연습을 하면 확실히 디테일하게 할 수 있고 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음정 연습은 평소 스케일을 통해서 하고 따로 곡을 하면서 하지는 않아요. 어려운 음정이 나오면 그냥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반복하면서 손에 감각을 익히는 거죠. 단, 이것도 최소한의 시간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자꾸 신경 쓰지 않고 틀리게 하면 그것도 학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한 번 넘어지면 그 자리에 돌부리가 있었던 걸 기억하고 피해가듯이 한 번 틀린 부분은 틀리지 말아야죠. 여러 번 반복하다가 잘될 때 구체적으로 왜 잘됐는지도 알고 그 동작을 기억해 두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정유진 | 연습곡과 스케일 연습의 중요성은 무엇인지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저는 항상 스케일로 레슨을 시작해요. 그리고 스케일이 한 키(key)가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넘어가질 않죠. 이건 제가 어렸을 때 가르침을 받던 양성원 선생님의 영향이 커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당시에는 스케일을 왜 그렇게 강조하실까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연습을 한 번 시작해보니 저절로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도 하루에 연습할 시간이 30분 주어지면 스케일을 연습해요. 연습곡은 쉽게 말하면 운동선수가 체력을 키워놓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마라톤 선수가 근력과 지구력이 없으면 선수가 될 수 없잖아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테크닉이 없거나 부족하면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도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요.

 

황지현 | 저는 리듬감이 좀 둔한데 어떻게 향상 시킬 수 있을까요.

리듬감은 음악가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일상생활에서 늘 접해오던 사람은 분명 리듬감도 더 타고났을 거라 생각하는데 물론 후천적으로 훈련을 통해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습을 할 때는 무조건 잠시라도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연습하는 게 중요하고, 연습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머릿속으로 지금 나오는 멜로디를 음표로 그려보는 딕테이션의 습관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정유진 | 큰 콩쿠르나 시험 볼 때 연습할 때의 긴장감이나 떨림 같은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 푸시는지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 하잖아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덤덤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연주나 콩쿠르가 끝나면 맛있는 것 많이 먹으러 다니고 야구 시즌이면 야구 경기도 관람하러 가고 지인들 만나서 유쾌한 모임들 가지고 그래요.

 

정유진 | 2006 윤이상 콩쿠르 우승 등 많은 콩쿠르에서 수상하셨는데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요.

역시 제 첫 국제 콩쿠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00년 독일 크론베르그에서 열린 파블로 카잘스 콩쿠르에 당시 서울예고 1학년이던 제가 최연소 참가자로 출전했는데 최고유망연주가상이라는 특별상을 수상했어요. 부상으로는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활을 증정받았는데 그건 지금 제 보물 1호가 되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그곳에 오신 세계적인 심사위원들로부터 받은 칭찬과 격려의 말씀들이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더 넓은 안목을 갖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어요. 물론 윤이상 콩쿠르 때도 1등에 제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유진 | 선생님의 연주 모습은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하신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요.

연주 모습은 연주하는 곡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흐 무반주 조곡과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연주할 때, 또는 베토벤 소나타와 피아졸라의 탱고를 연주할 때는 내가 마치 완전히 다른 인물인 것처럼 연주를 해야겠죠. 그러다보니 섬세하고 부드러운 모습도 보이고 때로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모습도 보이는가 봐요. 사실 이 질문은 제게는 아주 기분 좋은 칭찬처럼 느껴지네요.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역할이니 책임을 다해서 본인이 직접 이 곡이 작곡될 때의 작곡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연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황지현 | 곡을 읽다 보면 전체적인 흐름은 좀 알아도 세세한 부분까지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거나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섬세한 부분들은 어떻게 해야 잘 보일까요.

가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를 때가 있잖아요? 내가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내가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부분들, 보완해야 될 부분들이 들려요. 아주 기본적으로 음정이나 박자부터 다이내믹의 표현, 프레이징 등 대부분은 녹음한 것을 들어보며 고칠 때가 많아요. 음악적 표현력은 평소에 늘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될 거예요. 내가 지금 연습하는 곡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실내악곡·교향곡·소품까지 음악을 폭 넓게 들으면 자연히 감각을 키울 수 있어요.

 

황지현 | 현재 한국 최고의 교향악단인 서울시향의 부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명훈 선생님의 오디션이 꽤 까다로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케스트라 활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코멘트를 해주세요.

한국은 너무 훌륭한 젊은 솔리스트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는데 반면 오케스트라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많이 늦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세대의 음악가들이 한국에 좋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는 아주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음악계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많이 나와야 된다고 보고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오케스트라에 별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아요. 관심이 있어야 교향곡도 많이 듣게 되고 많이 듣다보면 정말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오케스트라 단원이 꿈이 될 수도 있거든요. 우리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하는 기악곡만 듣지 말고 오케스트라 곡들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첼로 레퍼토리는 음악이라는 큰 장르의 아주 작은 한 일부일 뿐이에요. 저는 오케스트라를 하면서부터 첼로 레퍼토리나 실내악에서는 찾을 수 없던 웅장한 사운드와 여럿이 하나 되는 진정한 음악의 매력을 느끼며 한층 더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가끔 오디션 심사를 해보면 우리 학생들이 콘체르토는 준비를 잘 해오지만 오케스트라 지정곡은 너무 그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전혀 템포도 다르고 소리 컨셉트도 틀려서 마치 교향곡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연주하는 오디션 참가자들을 볼 때면 정말 안타까워요. 부디 오케스트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주자주 연주회장을 찾아주세요. 악기 연습을 하는 것보다도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예요.

 

글·이웅규 기자 | 사진·윤윤수 기자

 

Cover Story | 콰르텟 21

 

Cover Story | 콰르텟 21

 

가장 뜨거울 나이, 스물 

 

콰르텟 21이 어느덧 창단 20년을 맞이했다. 한 단체가, 이렇게 하나의 목적과 꿈을 가지고 20년을 지속하기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20년 동안 한치의 흔들림 없이 음악의 본질을 찾기 위해 달려왔기에, 이들의 20주년은 더욱 더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오는 6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20년의 세월이 담긴 그들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1999년과 2000년의 경계선상. 지구는 새로운 시대 21세기, 그 밀레니엄의 도래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엊그제 같지만 세월은 벌써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때는 2000년대는 마치 지상의 시간이 아닌, 특별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일 것만 같았다. 그만큼 1900년대를 살던 우리에게 ‘2천’이라는 그 숫자는 멀고도 낯선 것이었다.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 21’의 이름은 그래서(?) 탄생했다. 1991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연주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네 명의 연주자들이 현악 사중주단을 결성했는데, 당시에는 오지 않을 시대처럼 느껴졌을 21세기까지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팀 이름을 콰르텟 21이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20년. 그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조차도 지금 이 시간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어느덧 ‘콰르텟 21’이라는 이름으로 20년의 세월을 함께 달려왔다. 그 사이 평균나이 서른 초반이었던 그들의 검은 머리 사이에는 이제 제법 흰머리가 눈에 띄며, 가정과 학교라는 각자의 삶의 터전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제2바이올리니스트를 제외하고 고스란히 그 세월을 함께 지켜낸 세 멤버,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제1바이올린)·비올리스트 위찬주·첼리스트 박경옥의 음악을 향한, 콰르텟을 향한 야무진 열정과 욕심만은 그대로다.

 

Interview with Qurtet 21

20년 동안 함께 했다는 것, 어떤 의미입니까.

김현미 | 한 연주단체가 하나의 목적을 갖고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물론 길게만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지만, 길게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콰르텟 21의 20주년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91년 세 분께서 콰르텟 21을 처음 창단할 때의 얘기를 듣고 싶군요.

박경옥 | 1990년 즈음 콰르텟을 창단하기로 했고, 1991년 첫 정기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창단 당시 팀명을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서울 콰르텟’ 등 여러 가지 후보들이 거론됐지만 결국 제가 제안한 ‘콰르텟 21’이 선택되었지요. 21세기까지 가자는… 뭐, 그런 의미였어요(웃음). 그런데 당시에는 이 같은 이름이 너무도 생소한 것이어서, 또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현대음악을 연주하곤 했기에, 사람들이 저희를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 오해하시곤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과거에도, 현재도 보수적인 대목이 더 많은 단체이지요.

 

‘하나의 목적’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콰르텟 21이 간직해 온 그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죠.

김현미 | 콰르텟이라는 장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굉장히 깊고 짙은 음악적 내용이 주는 맛, 이 풍성함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 이 공통된 테마가 20년 동안 우리를 묶어준 ‘하나의 목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그리고 우리 멤버들은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저희는 음악 외의 다른 모든 면, 예를 들어 금전적인 면이나 개인적인 문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 ‘음악’ 자체에 만족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지속돼 왔기 때문이지요.

 

그 풍성함은 왜, 유독 콰르텟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지요.

박경옥 | 사운드의 음량만을 논한다면 물론 콰르텟보다는 퀸텟이, 퀸텟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더 우위에 있겠지요. 하지만 저희가 얘기하고자 하는 사운드의 풍성함이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예요. 앙상블의 진정한 매력은 음악이 지휘자에 의해 이끌려 가는 오케스트라와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콰르텟은 여러 형태의 앙상블 중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미니멈이자 맥시멈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끌어갈 때 필요한 카리스마가 콰르텟 안에서 나타난다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물론 구심점이 되거나, 상대적으로 결단력이나 적극성을 가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콰르텟은 네 사람의 자발적인 내용이 필요하지요.

예를 들어, 피아노 트리오와 콰르텟을 비교하자면, 피아노 트리오는 각기 다른 악기가 모여 있기 때문에 모두 자신의 악기에만 충실하면 얼마든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반면, 스트링 트리오나 콰르텟처럼 한 장르의 악기가 가지는 앙상블의 디테일이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요. 하지만 여기서도 스트링 트리오와 콰르텟의 차이는 존재하지요. 바로 스트링 트리오에는 보이스가 하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링 트리오에서는 우리가 콰르텟에서 받는 사운드의 만족감을 얻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에요. 장르에 따라 요구하는 내용도 달라지겠지만, 스트링 콰르텟은 현악기 장르에서 가장 심화된 장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최근 들어 콰르텟을 위시한 새로운 실내악 단체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박경옥 | 한동안 실내악이 침체돼 있었지만, 요즘에는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거 같습니다. 새로운 스트링 콰르텟이 많이 나오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다고 봐요. 이렇게 잘하는 그룹이 많이 나온다면 저희로서도 굉장히 고무적일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만들어진 스트링 콰르텟 중 몇몇은 그 방향 설정이 조금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면, 퓨전 또는 대중화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작업들인데, 이것들은 레퍼토리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는 좋을지 모르나, 만약 이러한 것들로 인해 음악 자체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세 분(김현미·위찬주·박경옥)은 계속 함께 하셨지만, 20년 동안 제2바이올리니스트는 다섯 차례 변화가 있었습니다.

김현미 | 제2바이올리니스트 자리만이 바뀐 이유는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콰르텟은 음악적 내용과 수준, 컬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personality)까지 알게 모르게 깊숙이 닿아있기 때문에, 하나의 팀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멤버들 사이의 공통분모가 충분히 존재하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하는데, 만약 이 공통분모가 지속되지 않거나 자신의 입장과 사정에 의해 이 관계 안에 지속적으로 있을 수 없다면 자리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쩌다 보니 제2바이올리니스트가 계속 바뀌게 되는 역사를 갖게 됐는데, 아무래도 그것에 따라 그동안 팀의 음악적 변화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서포트보다 리드에 익숙하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2바이올리니스트가 가장 어려운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필균 | 처음 1년 동안은 튀지 않고 제1바이올린을 잘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 있었어요. 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저는 오케스트라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에 특히 민감한 편이지요. 하지만 이제 3년 정도 함께 하다 보니 교수님들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훨씬 더 편안해졌습니다. 특히 베토벤 사이클에서 복잡하고 정교하게 쓰인 베토벤의 후기 콰르텟들을 연주하면서 제2바이올린의 역할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2바이올리니스트의 역할은 서포트만이 아니죠.  

 

그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위찬주 | 아무래도 베토벤 전곡 연주를 꼽을 수 있겠지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처음으로 베토벤 스트링 콰르텟 전곡을 완주했고, 그리고 2010년 다시 베토벤 사이클에 도전했습니다. 처음보다 두 번째 사이클에서의 베토벤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더군요. 베토벤만큼 콰르텟을 정교하게 만든 작곡가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주년 공연인 만큼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셨다고요.

박경옥 | 굉장히 실험적인 연주회를 보게 되실 거예요. 전부터 콰르텟 21의 음악적 변화와 성장에 큰 관심을 가져 온 후원 회사의 제안으로 이뤄진 무대로, 작곡가 김도희 씨의 작품 ‘Quintet i21’을 최근 가장 뜨거운 트렌드인 태블릿 PC와 스크린을 연결해 미국 스탠포드 공학연구소에 있는 작곡자 김도희 씨와 실시간으로 협연을 하게 됩니다. 수억 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연주자와 같은 시간에 함께 연주하는 것이지요. 클래식이 어렵다, 특히 현대음악은 난해하다고 느껴 오셨던 분들께 이러한 대중적인 기기들이 어떻게 클래식 음악과 접목이 될 수 있는지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겠지요. 전부터 음악적 인연을 맺어 온 작곡가 김성기 씨가 콰르텟 21의 20주년을 위해 특별히 써주신 작품은 첫 곡으로 연주할 예정입니다. ‘빛’이라는 테마 아래 다양한 형태의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지요. 그리고 역시 콰르텟의 진수인 베토벤의 스트링 콰르텟 ‘Serioso’와 피아니스트 이미주 선생님과의 협연으로 브람스의 스트링 콰르텟과 피아노를 위한 ‘퀸텟’을 연주하게 됩니다.

 

정통 클래식과 다른 장르의 접목, 즉 퓨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번 공연에서의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박경옥 | 접목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예요. 단지 본질을 왜곡하는 게 우려되는 것이지요. 본질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저희도 프로그램을 일부러 좀 무겁게 꾸몄습니다. 실험성이 가미된 현대음악의 매력, 그리고 베토벤과 브람스의 매력을 각각 그것들의 본질에 충실한 연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저희들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됐으면 합니다.

김현미 | 이번 무대에서 연주할 네 작품 모두가 저희에게는 엄청난 도전입니다.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은 실험적인 내용과 동시에, 정통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음악을 같이 연주하기 때문에 과연 이것이 청중에게 얼마나 어필이 될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절대 라이트하게(가볍게)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저희는 그게 싫어요. 그러면 여기까지 열정을 갖고 올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박경옥 | 글쎄요, 어렵네요. 저희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20주년이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참 다행이고 감사해요. 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는 허무감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텐션이 필요해요. 자꾸 음악적 본질에 관해 얘기하게 되는데, 잘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야겠지요. 우리는 지금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거라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그리고 조금 힘들더라도 극성스럽게 일을 벌렸으면 해요. 저절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20년을 달려왔지만, 우리가 꽃피는 시절은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몰라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당초 연습을 앞둔 이들이 인터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들의 토론은 쉽게 그칠 줄 모른다. 그만큼 할 말도, 해야 할 말도, 콰르텟 21에 관해서라면 많은 이들이다.

콰르텟 21을 만날 때마다 듣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Serioso’이다. 그들은 음악에서 만큼은 쉬운 길이 싫단다. 그래서 어렵고 무거운 ‘Serioso’를, 기어코 선택한다. 15주년에 이루지 못했던 레코딩 작업을 올해 안에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인데, 첫 단독 음반의 레퍼토리를 베토벤으로 정한 것 역시 그들의 취향답다. 그들은 그게 좋단다. 약관 또는 방년 20세, 남자는 진정한 성인이 되었고, 여자는 가장 꽃다운 나이임을 이르는 말이다. 콰르텟 21, 그들은 지금 에너지와 열정이 충만할 가장 뜨거울 나이, 스물 아닌가!

글·김지수 기자

 

**  콰르텟 21이 걸어온 길

 

현재 김현미(제1바이올린, 경원대 교수)·김필균(제2바이올린, 대전시향 악장)·위찬주(비올라, 한양대 교수)·박경옥(첼로, 한양대 교수)으로 구성된 콰르텟 21은 1991년, 제2바이올린을 제외한 세 명의 연주자들과 창단 당시의 제2바이올리니스트 백혜선의 구성으로 6월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연주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콰르텟 활동을 시작한 콰르텟 21은 1992년 예음상 실내악부문(예음문화재단) 수상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부천시향과 협연하며 국내 음악계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94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윤이상 1주기 추모음악제’에 초청받아 연주했고, 일본 ‘키리시마 국제음악제’·예술의전당 주최 ‘교향악 축제’ ‘실내악 축제’ 등 다수의 초청연주를 통해 현악 4중주의 매력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현악 4중주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을 완주하면서 콰르텟으로서는 훈장과도 같은 값진 업적을 남겼다. 한층 더 성숙해진 콰르텟 21은 이후 2003년 겨울 대한민국 정부 문화사절로 위촉되어 서남아시아 순회연주를 가졌으며, 2004년부터 지역별 작곡가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빈에서 프라하까지’ ‘파리에서 런던까지’ 등 다양한 주제의 공연을 펼쳤다. 2007년부터는 베토벤에 이은 또 하나의 명 현악 4중주인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를 연주, 최근 그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6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연예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예술인들에게 수여하는 ‘2006 올해의 예술상’을, 2007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제39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하며 대통령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대원문화재단의 ‘대원음악상 연주상’을 수상했다. 2010년 3월부터는 목동의 KT챔버홀에서 다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대장정을 시작했다. 

 

목차

목차

 

커버스토리 | 콰르텟 21

가장 뜨거울 나이, 스물

 

Talk Talk

첼리스트 이정란과 정유진·황지현 학생

 

On Stage | 안네 소피 무터 in Recital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

 

Preview

김남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앙상블 예 정기연주회

2011 디토 페스티벌

송영훈의 4 첼리스트 콘서트

채유미 바이올린 독주회

이창형 더블베이스 독주회

플루티스트 최은정의 ‘The Blooming’

백수현 플루트 독주회

신상원 첼로 독주회

영산금요·영 아티스트 콘스트·목요초청음악회

 

String Stage

박지영 바이올린 독주회

김연경 바이올린 독주회

이니스 앙상블 정기연주회

권 명 귀국 바이올린 독주회

이정아 바이올린 독주회

조정민 더블베이스 독주회

이 무지치 내한공연

앙상블 끌레이오의 10년지기 기념 콘서트

서주희 바이올린 독주회

앙상블 에피오네 연주회

김은애 귀국 바이올린 독주회

이현정 첼로 독주회

이주현 바이올린 독주회

 

예술계 여성 리더 | 작곡가 진은숙

세월 속 농축된 아이디어들이 내 작품의 원천

 

Interview | 이화여대 음대 학장 채문경

이화여대, 학생 오케스트라 지원사업단 맡다

 

Young Power Interview |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음악을 향한 열정, 그 ‘순수’를 되찾다

 

 Interview | 백순실

“모든 예술은 생명의 탄생을 노래한 것”

 

한국연주자의 음반 |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

값진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여정

 

Review 

허상미 귀국 바이올린 독주회

채희철·어수희 두오 리사이틀

이혜정 바이올린 독주회

 

흥미로운 실내악 편성 작품

바르토크로부터 재탄생된 편성

 

현대음악 다가가기

현대음악의 인물들 <11> 야니스 크세나키스

 

세계의 공연장 | 시벨리우스홀 (Sibelius Hall)

 

비올라 히스토리  ④  

20세기 비올라 역사 ‘터티스와 프림로즈’

 

마크샤바노 현악실

 

현악기 주법

연주자의 몸, 그리고 주법들

 

스트링 지상레슨

쇼스타코비치 ‘Sonata for Violoncello and Piano in d minor, Op.40’

슈만 ‘Adagio and Allegro for Cello & Piano in Ab Major, Op.70’

 

특집-현악기 명협주곡 BEST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 작품 배경 및 개요

2. 작품 분석

3. 다양한 명연들

4.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이탈리아 크레모나 현대 악기 전시회

 

Recording News

 

독자마당

 

신동헌의 애드리브

 

신간 안내

 

연주 캘린더

 

뉴스동향

 

Last Chorus

 

 

현대음악 다가가기 ⑮

현대음악 다가가기 ⑮

현대음악의 인물들 <10>

죄르지 리게티

리게티는 항상 진지하고 여러 방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넌센스와 모순을 사랑하면서도, 음악은 진실해야 하며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그에게는 항상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려는 도전적 자세’ ‘전통의 부정이 아닌 전통의 극복’ ‘시대를 초월한 최고 수준의 음악에 도달하려는 열망’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리게티의 아방가르드한 삶과 음악

존 케이지처럼 죄르지 리게티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현대음악에서 아방가르드 계열의 작곡가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케이지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케이지처럼 그도 항상 새로운 세계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것을 되풀이하기 싫어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위해 계속 걸어 나가기를 원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그것에 대한 성과를 얻으면 그것을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일로 여기고 또 다시 길을 떠났다. 리게티는 이를 사막 속에서의 방황으로 비유하였다. 계속 걸어갈 수는 있지만 새로 발견되는 것은 하나도 없이 계속 모래만을 바라보며 걸어 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할 뿐, 음악이든 생활이든 자신을 어떤 규정이나 틀에 묶어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그의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그로 하여금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아방가르드로서의 삶을 살게 하였다.

트란실바니아(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리게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서방으로 망명하기 전에 이미 70여 개의 작품을 써낸 유능한 작곡가였다. 당시에 썼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무지카 리체르카타’와 ‘변용적 야상곡’을 꼽을 수 있다.

글·임현경(음악평론가)

 세계의 공연장

세이지 게이츠헤드홀

세이지 게이츠헤드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성능을 갖는 음악당과 지역민 그리고 모든 방문객들이 음악을 친밀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의 제공 및 도시재생사업의 중심이 되는 공공 건축물로서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1,650석·400석·300석 규모의 콘서트홀·실내악홀·리허설 룸과 같은 공연 공간과 음악 학교·음악정보센터 등의 공공시설로 구성되었으며, 외부에서 바라보면 바다조개 같은 단면의 형상과 역동적으로 물결치는 듯한 외형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국의 뉴캐슬 게이츠헤드

게이츠헤드(Gateshead)는 인구 20만의 중소 도시로서 북동부 잉글랜드 타인위어주(Tyne and Wear)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제철·조선·화학 등의 중화학공업과 탄광으로 유명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가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함에 따라 생활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차츰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염되고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환경 등으로 실업자들과 노인들만이 남은 유령도시로 전락하게 됐다. 이런 도시의 풍경은 도시를 점점 더 침체하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도시로 남게 했는데,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던 도시를 변화시키기 위해 도시재생사업(Culture-led Urban Regeneration)을 기획하기에 이르는데, 이는 게이츠헤드 부두지역에 ‘문화’를 테마로 한 기획이었다.

이런 도시재생사업은 게이츠헤드 시가 세계의 창조적 도시로 인식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게이츠헤드=세계 창조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게이츠헤드 시의 문화가 중심 되는 ‘도시재생프로젝트’는 2001년에 건립된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Gateshead Millenium Bridge)·2002년의 발틱 현대미술관(BALTIC the Baltic Center for Contemporary Art)·2004년에 건립된 세이지 게이츠헤드홀(The Sage Gateshead Hall)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같은 문화 중심 도시재생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에 따라 창조산업 분야 종사자가 2002년에 2만 2천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6년에는 5만 9천명으로 증가하여 약 4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으며, 연매출 26억 파운드의 실적을 올렸다. 도시재생프로젝트의 중심인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발틱 현대미술관·세이지 게이츠헤드홀은 연간 167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글·김남돈 (삼선엔지니어링 대표이사 / 남서울대 건축학과 연구교수)

특집 | 현악 전곡 시리즈

특집 | 현악 전곡 시리즈

바르토크 현악 4중주 전곡

그가 남긴 6개의 현악 4중주는 20세기 현악 4중주의 핵을 이루는 걸작이다. 이 작품들은 베토벤 현악 4중주의 고전적 전통을 기반으로 20세기 전반의 새로운 음악적 경향과 민속적 어법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또한 바르토크의 30여 년에 걸친 중요한 창작 기간 전반에 걸쳐서 작곡되어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제1번부터 자신의 어법을 완전히 확립한 제6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발전과정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다.

① 개요 및 배경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들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과도기에 확실하게 자리 잡은 혼합스타일을 보여준다. 과거의 언어들과 전혀 새로운 어휘들이 한데 부딪히며 어우러져 내는 음악적 긴장감과 상승효과가 압권이다. 표현의 밀도와 구조적 형식의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결합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들은 충실하고 선명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글·김순배(음악평론가)

② 작품 분석

그가 남긴 6개의 현악 4중주는 20세기 현악 4중주의 핵을 이루는 걸작이다. 이 작품들은 베토벤 현악 4중주의 고전적 전통을 기반으로 20세기 전반의 새로운 음악적 경향과 민속적 어법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또한 바르토크의 30여 년에 걸친 중요한 창작 기간 전반에 걸쳐서 작곡되어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제1번부터 자신의 어법을 완전히 확립한 제6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발전과정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다.  

글·서주원(음악칼럼니스트)

③ 전곡 레코딩

베토벤 현악 4중주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품인 바르토크 현악 4중주. 이들 작품이 전곡으로 최초로 녹음이 된 지 50여 년이 갓 넘는 현재까지 의외로 적은 양의 레코딩이 발매되었고, 그 해석의 흐름은 연속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CD로 발매된 음반을 살펴보면 린제이·프로 아르테·칠링길리언·탈리히·에머슨·알반 베르크·켈러·타카시·노바크·도쿄·뉴 부다페스트·하겐·헝가리·줄리아드·베그 등 15팀 남짓한 앙상블들이 녹음을 남겼고, 이 가운데 몇몇 팀들이 수차례 녹음을 남겼을 뿐이다.

글·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④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지난해 4월, 베토벤과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 연주를 이어오던 콰르텟 21이 드디어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 전곡을 완성했다. 베토벤과 함께 또 하나의 현악 4중주 거봉으로 손꼽히는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는 베토벤만큼 방대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법과 리듬, 밸런스, 현대적 요소의 해석 등 까다로운 점들로 인해 그동안 많은 현악 사중주단의 선망이자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 받아왔다. 바르토크의 이 여섯 곡의 현악 4중주 모두를 만나 온 콰르텟 21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에게 연주자에게 바르토크는 어떤 의미인지 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