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 |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더 중요한 것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
“분명한 건 한 길을 보고 그것에만 집중한다면 반드시,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예요. 더 급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른 걸 포기하고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하죠.”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가 본지의 ‘음악전공생의 음악·음악인·유학 선호도 조사’에서 2011년 기대되는 연주자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08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은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의 존재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를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연주자로서 확실히 각인시켜 준 것은 롱-티보 이후 그가 보여준 식지 않는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신현수만의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형 스타들만을 상대하는 매니지먼트사 에이백스(Avex)는 이런 신현수의 가능성을 알아차렸고, 지난 11월 신현수와 손잡고 일본에서 음반을 출시했다. 이제 그는 ‘순수 국내파 연주자’라는 식상한 수식어에서 벗어나, 오직 연주로, 그리고 그가 지닌 특유의 스타적 기질로 세계의 이목을 끌어 당기고 있다.
최윤진 | 얼마 전 공식적으로 첫 리사이틀을 가졌는데 어떠셨나요.
아무래도 첫 리사이틀이다 보니 여러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신 것이 그동안 협연은 많이 했는데 리사이틀은 처음이라 떨리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는데요, 사실 저는 작은 연주든, 큰 연주든 꾸준히 무대에 서왔기 때문에 특별히 독주회라서 생기는 부담 같은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자꾸 그런 질문을 받으니 점점 부담이 되더군요(웃음). 그래도 연주는 잘 끝냈고, 끝나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지금은 연말 연주들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고래희 | 국제 콩쿠르의 경험이 많으신데, 국제콩쿠르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떤가요. 서로 의식하다보면 위축되기도 할 것 같은데요.
위축되진 않아요. 콩쿠르에서 남을 의식한다면 결국 경쟁밖에 안되고,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없죠. 그냥 내 자신을 잘 어필하고 최선을 다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 같아요.
고래희 | 콩쿠르 나갈 때의 음악과 연주가로서 청중에게 보여주는 음악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스타일의 차이 아닐까요. 콩쿠르에서의 연주는 일단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연주하는 데 집중해야 하죠. 반면, 청중 앞에서의 연주는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호흡과 교감, 즉 나의 연주를 청중에게 얼마나 잘 어필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최윤진 | 연주할 때 징크스는 없나요.
음… 저는 없어요! 징크스라는 것이 그것을 징크스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정말 징크스가 돼버리죠. 그래서 전 없어요(웃음)! 징크스는 아니지만 지난번 롱-티보 콩쿠르에 나가기 전 꿈은 평범하지 않았어요. 원래 이런 꿈을 잘 믿지는 않지만 롱-티보에 나가기 전 큰 뱀과 작은 뱀들이 함께 제 몸을 물어뜯는 꿈을 꿨거든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롱-티보에 우승을 하자 그 꿈이 머릿속을 스치더군요.
고래희 | 한국에서만 공부한 ‘국내파’ 연주자로서 국제콩쿠르 우승이나 연주활동은 많은 전공생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음악전공생들이 어떻게 하면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분명한 건 한 길을 보고 그것에만 집중한다면 반드시,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예요. 더 급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른 걸 포기하고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하죠. 저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공부했지만, 부족함 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콩쿠르나 연주, 페스티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외국의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고, 또 요즘에는 유투브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가 있어 세계 각국의 영상을 실시간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최윤진 | 아, 유투브를 통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몰입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더군요. 무대에서는 전혀 긴장되지 않나요.
무대 공포증은 없지만, 저도 다른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무대에 오르기 직전엔 떨려요. 하지만 약간의 긴장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그 긴장감과 설렘을 즐겨야만 청중에게도 지루한 연주가 되지 않으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고래희 | 예전 한 인터뷰에서 봤어요. 콩쿠르나 연주를 앞두면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계속 연습에만 몰두한다던데…
그런 적이 있었어요. 두 달 동안 정말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계속 연습만 했었죠. 저도 몰랐는데, 주위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제가 연습을 시작하면 약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고요(웃음). 그 정도로 몰입해서 연습하는 거죠. 하지만 연주 하루 전에는 다른 날보다 더 잘 먹고 잘 자려고 해요. 전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도 사실 뼈도 굵고 튼튼해요.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활동적이죠.
최윤진 | 그럼 바이올린을 안할 때는 주로 운동을 하시나요.
네, 운동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스노보드·수영, 특히 농구나 야구같이 공을 이용한 운동을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한강이나 공터를 찾아요.
고래희 | 따로 체력 관리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연주를 위해 하시는 운동이 있나요.
수영이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왔어요. 저희처럼 어깨를 비롯한 신체를 많이 이용하는 연주자들에게 수영은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수영을 함으로써 어깨에 좋은 영향을 받아요. 수영은 체력소모가 많이 되는 운동인데, 제가 지금 무대 위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그동안 수영을 통해 다져온 체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고래희 |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슬럼프는 없었던 거 같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슬럼프를 가질 시간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 년에 꼭 한 번씩은 국제 콩쿠르에 나갔거든요. 목표가 없을 때 슬럼프가 찾아온다고 해요. 물론 가끔 연습이 잘되지 않거나 하기 싫을 때는 있죠. 그럴 때는 그냥 악기를 넣어둬요. 그리고 제가 바이올린 외에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요. 예를 들어, 저는 헤어나 메이크업,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쪽에 잠시 집중을 하는 거죠. 영화도 좋아해서 연습하다 밤에 갑자기 모자 눌러쓰고 영화관에 가서 심야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최윤진 |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수록 이면에는 외로움도 느낄 것 같아요.
외국에서 연주할 때,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수와 호응을 받고 호텔로 돌아와 호텔 문을 닫는 순간, 그때가 가장 외로운 거 같아요. 하지만 전 그 외로움 자체를 즐겨요. 외로움 때문에 우울해진다면 끝도 없이 우울해지지 않을까요.
최윤진 | 김남윤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선생님은 저에게 제2의 엄마 같은 분이에요. 이제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제 기분이 어떤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까지 알아차리시죠. 호랑이 같이 무섭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이것이 선생님의 사랑법이라고 생각해요. 롱-티보에서 우승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수상 후 바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정말 펑펑 우시더군요. 당신은 감격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시면서 타지에서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제 옆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시다며 전화를 끊지 말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렇게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호텔까지 갔었죠.
최윤진 | 언니(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와 같은 악기를 한다는 게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나요, 마이너스가 되나요.
언니와 저는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같은 악기를 하고는 있지만 서로 꿈꾸고 생각하는 길이 다르니까요. 오히려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돼요. 제 음악은 좀 화려한 스타일인 반면 언니는 묵직한 스타일인데, 집에서 함께 연습을 하면서 서로가 보충해야 할 부분에 대해 조언해 주니까요.
고래희 |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활동 계획도 있으신지요.
저 사실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도 합니다(웃음). 솔리스트로서의 인식이 강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유럽에서 종종 연주하곤 하는데, 그쪽에서는 오히려 솔로보다 실내악 연주를 더 많이 해요.
최윤진 |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데, 특히 일본에서의 호응은 대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네(웃음). 일단 하마사키 아유미와 같은 대형스타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에서 저에게 레코딩 작업을 제안한 것 자체에서 조금 실감이 나요.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연주가 많이 있어요. 2011년에도 이미 아시아 곳곳에서 연주가 잡힌 상태고요. 아마도 2011년까지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될 것 같습니다.
최윤진 | 교육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지금은 연주자로만 살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성숙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나이가 많이 들어서 제2의 신현수를 키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웃음).
고래희 | 신현수 만의 색깔이 담긴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음악은 어떤 음악일지 궁금합니다.
남과는 다른 음악이라고 할까요. 어떤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갖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가끔은 그 고정관념에 너무 갇혀버리는 것 같아요. 저는 저의 색깔을 입히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이라고 다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거기에 젊음을 더해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고래희 | 이제 새해네요. 2011년도 바쁜 한 해가 되겠지요.
우선 가깝게는 국내에서 여러 오케스트라들과의 신년음악회가 잡혀 있어요. 4월에는 금호아트홀에서 또 한번의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고요. 일본 NHK 투어 연주, 피아니스트 임동혁과의 리사이틀도 계획중이에요.
글·김지수 기자 | 사진·윤윤수 기자
Read Full P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