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
인생은 언제나 여행이다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가 오는 3월 16일 LG아트센터에서 자신의 음악 친구들(바이올리니스트 로렌쪼 가토, 비올리스트 리다 첸 아르헤리치, 첼리스트 송영훈)과 함께 ‘Travelling Paganini – Journey to the Sun’이라는 타이틀로 연주회를 연다. 드니 성호는 이번 공연을 통해 인종과 나라를 뛰어넘는 우리의 공통된 ‘뿌리’가 음악임을 말하려 한다.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는 현재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다. 14세에 벨기에의 영 탤런트(Young Talent)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그의 음악적 재능은 수면위로 떠올랐고 이후 파리 고등사범음악원과 벨기에 몽스 왕립음악원,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을 졸업했으며, 브라질 출신의 거장 기타리스트 세르지오 아사드와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를 사사했다.
“네 살 때 피아노를 통해 처음 음악을 접했어요. 그때 피아노를 치면서 제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죠.”
네 살 꼬마는 자신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피아노에 이끌렸다. 하지만 드니 성호의 집에 피아노를 가르칠 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가 피아노 대신 드니 성호의 손에 쥐어 준 것은 기타. 그가 일곱 살 되던 해였다.
“일곱 살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기타를 배운 지 1년이 지난 후에 제 실력은 다른 사람들이 3년을 배워야 가능한 실력만큼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체육교사였고, 어머니는 꽃을 가꾸던 분이었어요. 음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기에 누구 하나 제 재능을 키워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 자라야만 했다. 그리고 기타를 시작한 지 6년이 지나 그는 벨기에 영 탤런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쾌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컴피티션의 우승을 계기로 드니 성호는 그의 재능을 알아주고 키워줄 수 있는 새로운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전환점이 된 것이다.
“저의 첫 기타 선생님은 그리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어요. 연습을 하라는 말뿐이었지, 그 방법과 음악적인 부분은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죠. 그래서 혼자 연습하고 혼자 터득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그래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합니다. 사실 영 탤런트 컴피티션에 나가게 된 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우승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컴피티션 이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열아홉 살 때에는 정말 좋은 선생님께 배우게 됐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선생님께 배우려니 너무 힘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모든 걸 잊고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으니까요.”
드니 성호의 연주는 유럽의 각종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독일 <Ko‥lner Stadt Anzeiger>는 드니 성호의 연주를 보고 “그는 천재성을 잘 보여줬다. 그의 손가락들은 음악과 함께 신들린 듯 날아다녔다”고 평했고, 프랑스의 <Les Cahiers de la Guitare>는 “감각적이고 감성적이며 조화롭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2004년 유럽콘서트홀협회(ECHO)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라이징 스타 선정 이후 그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나 빈 무지크페라인 잘·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버밍엄 심포니홀 등, 기타리스트로서는 보기 드물게 세계적인 명성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이징 스타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의 연주가 끝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왔다. 화려함 이면에는 여전히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인간 드니 성호가 있던 것이다.
내 심장은 한국인
2006년 첫 한국 방문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드니 성호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제는 음악가로서 한국과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동안 여러 연주회를 하면서 한국 청중의 연령대가 매우 폭넓으면서도 수준이 높다는 걸 느꼈어요. 관객의 반응도 살아있고요. 한국에서의 연주는 정말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특히 그는 한국 연주자들의 높은 수준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4년 전 하우스콘서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연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들은 권혁주의 바이올린 소리는 마치 오이스트라흐의 울림처럼 들렸어요. 김선욱 역시 대단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여러 가지 일로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 나라에 살고 있음을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한국은 세계 속에 널리 알려져 있고, 갈수록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열정적으로 뛰는 제 심장의 소리를 들을 때면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느끼곤 합니다.”
비록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기가 태어난 땅을 밟지 못했던 드니 성호의 심장에는 여기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더, 이 나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숨쉬고 있다.
‘Travelling Paganini’
드니 성호는 여러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 소사이어티를 결성하는 꿈을 가질 만큼 실내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간직해 왔다.
“한국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는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죠. 베를린필처럼 세계적인 교향악단조차 클래식 기타리스트와 협연하는 일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클래식 기타 연주는 일반적이지 않아요. 그건 기타의 사운드가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과 같이 큰 콘서트홀 무대를 채울 만큼의 볼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앰프 등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사운드를 확성할 수 있게 됐지만요. 심지어 모차르트·베토벤·슈만과 같은 과거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기타 작품을 작곡하지 않았지요. 그만큼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기타는 늘 다른 악기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고, 그 특성상 다른 악기들의 반주 역할을 하는 악기로 인식되어 왔지요. 하지만 저는 실내악에서는 기타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가 동등한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니 성호는 무엇보다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 소사이어티를 만드는 것이 음악가로서 자신의 꿈이자 목표라고 말한다. 지금 그는, 어쩌면 그 도전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지 모를 공연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이 성과물은 오는 3월 16일 LG아트센터에서 ‘Travelling Paganini – Journey to the Sun’이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오른다.
특별히 이번 공연에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콩쿠르 2위(2009)·맨체스터 RNCM 콩쿠르 1위·이탈리아 국제 안드레아 포스타치니 콩쿠르 1위·2010-2011 라이징 스타 선정에 빛나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로렌쪼 가토(Lorenzo Gatto)와 함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장녀이자 바실리오 스트링 콰르텟의 멤버인 비올리스트 리다 첸 아르헤리치(Lyda Chen Argerich), 그리고 한국의 대표 첼리스트로 활약중인 송영훈이 함께 한다.
“로렌쪼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투어 리사이틀을 함께 하면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음악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와의 매칭은 정말 완벽하리만큼 자연스러웠습니다. 특별히 리허설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이요. 늘 함께 연주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뿔뿔이 흩어져 있던 친구들이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모인다니 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Travelling Paganini – Journey to the Sun’이라는 공연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탈리아의 작곡가 파가니니를 시작으로 스페인의 파야, 브라질의 빌라 로보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피아졸라까지 이르는 음악 여행으로, 첫 여행인 이번 공연에서 그들은 파가니니와 피아졸라를 연주한다. 특별히 “바이올린은 나의 애인이다. 그러나 기타는 나의 주인이다”라고 말한 파가니니는 총 43개의 짧은 피스로 이뤄진 기타의 명작 ‘Ghiribizzi’를 남겼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1번에서 5번까지의 피스가 기타 솔로로 연주된다.
“기리비치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 곡은 한 피스의 길이가 최대 2분을 넘지 않는 43개의 짧은 피스들로 이루어진 곡입니다. 매우 섬세한, 작은 진주 같지만 그 안에 놀랄 만큼 아름다운 테마들을 담고 있어요. 마치 페이스북이나 포스트월에 남긴 짧지만 강렬한 러브 레터 같은 곡이지요.”
그밖에도 파가니니의 ‘Sonata Concertata Op.61 in A Major MS 2’(바이올린·기타), ‘Caprices No.5 in a minor Op.1’(바이올린), ‘Quartet 15 in A Major, Mvt 1·4·5’(바이올린·비올라·첼로·기타)와 함께 피아졸라의 다양한 작품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를 ‘태양을 향한 여행’이라고 결정한 것은 음악을 통해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대륙을 여행함으로써, 다른 인종·다른 내셔널러티(nationality)를 지녔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여행이지요.”
드니 성호는 이번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계적인 레이블 Naxos와 함께 파가니니 음반을 발매한다.
글·김지수 기자 | 사진제공·Sens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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